“도시는 지상에서 화려하게 빛나지만, 그 근간을 지탱하는 것은 지하 깊은 곳의 보이지 않는 터널입니다”
37년 전, 모두가 외면하던 ‘수직터널’ 시공이라는 틈새를 파고들었고, 수많은 실패와 도전을 거쳐 국내 유일의 전문기업을 만들었다. 7천 원짜리 자전거에서 출발해 세계 인프라 시장을 향해 달려온 그의 여정은 단순한 기업사의 기록이 아니라, 집념과 신뢰가 어떻게 한 산업을 개척했는지 보여주는 살아 있는 사례다.
“저는 현장에서 경험을 체득하면서 기업을 이끌어 왔습니다”
김인필 성풍이앤에이 회장의 첫마디는 지난 37년의 시간을 압축한 듯 묵직했다. 기술력, 책임감, 그리고 신뢰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시간의 흐름만큼 성풍이앤에이의 신뢰와 기술력은 차곡차곡 쌓여갔다.
■ 실패에서 다시 시작한 7천 원짜리 자전거...수직터널에서 출발한 성풍의 37년
1980년대 후반, 김 회장은 제과회사 영업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더 큰 도전을 위해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창업에 나섰다. 처음 시작한 사업은 오래가지 못했다. 3년 만에 모든 것을 잃었다. 하지만 그는 주저앉지 않았다.
김 회장은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했습니다. 7천 원짜리 자전거를 외상으로 마련해 다시 현장으로 돌아갔습니다”라며 그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다시 작은 일부터 시작하며, 건설 현장과 산업단지를 발로 뛰었다. 그러던 중 충북 제천 일대의 시멘트 공장들에서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특정 공정에 주목하게 됐다. 바로 ‘수직터널’ 시공이었다.
김인필 회장이 직접 개발한 장비를 소개하고 있다./사진=뉴스영
1989년 3월 3일, 김 회장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기회가 있다’는 신념으로 성풍건설을 설립했다. 당시 건설업계에서조차 생소하던 수직터널 시공에 도전한 것이다. 수직터널은 수백 미터 지하까지 정밀하게 굴착해야 하는 고난도 공정으로, 국내에서는 기술도 장비도 확보된 곳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기존 장비에 의존하지 않고, 매 현장에서 필요한 기능을 직접 설계해 장비를 제작하며 기술을 쌓아갔다. 이러한 현장 기반의 집요한 기술 개발은 성풍 고유의 RBM(Raise Boring Machine) 기술로 구현되었고, 이후에도 난이도 높은 굴착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기술을 고도화해 왔다.
최근에는 고심도 굴착 분야까지 기술력을 확장해, 차세대 수직 굴착 시스템 DSBM(Down Shaft Boring Machine)을 자체 개발했다. DSBM은 성풍이앤에이가 오랜 시간 축적한 수직 굴착 기술의 정점이자, 미래 인프라 시장을 향한 전략적 전환점이 되고 있다.
그렇게 37년동안 한 길을 걸어온 성풍은, 지금 국내 유일의 수직터널 전문 기업이자, 복합 인프라를 이끄는 기술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성풍이앤에이, 이름을 바꾸며 역할을 넓히다
최근 성풍건설은 새로운 이름 성풍이앤에이(SUNG POONG ENA)로 다시 태어났다. ‘Engineering for Next Era’, 즉 ‘다음 세대를 위한 엔지니어링’이라는 의미다. 단순한 사명 변경이 아니라, 건설을 넘어 복합 인프라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술 파트너로의 전환을 뜻한다.
이제 성풍의 기술력은 수직터널을 넘어, 수력발전소, 양수발전소,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저장소, 지하 에너지 인프라, 대심도 송수관로 등 미래 기반시설 전반에 응용되고 있다.
김인필 회장이 성풍이앤에이의 비전을 강조하고 있다./사진=뉴스영
“우리는 단순히 공정을 수행하는 시공사가 아닙니다. 기술적 난제를 해결하고, 끝까지 책임지는 독립적 파트너가 되려 합니다”
김 회장은 “기술은 복제될 수 있어도, 신뢰는 시간이 만든다”는 경영 철학을 강조했다. 회장실에 걸린 사훈엔 ‘성실, 정직, 정확’이라는 세 단어가 적혀있다. 그는 “기술은 언젠가 복제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뢰는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프로젝트든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 때에만 착수합니다. 그것이 성풍이앤에이가 오늘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라며 기업의 신뢰를 강조했다.
이 철학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성풍은 수십 년간 외형보다는 내실, 성과보다는 책임을 우선하며 기술을 쌓아왔다. 그리고 이 신뢰의 기반 위에서 이제는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과의 파트너십을 하나씩 구축해 나가고 있다.
■현장에서 답을 찾는 리더십
이런 철학은 회장 본인의 실천으로도 이어진다. 인터뷰 당일, 기자가 성풍을 찾았을 때 회장실 옆에서는 중국에서 온 기술 파트너들과 장비 생산 협의 회의가 한창이었다. 그 직후 그는 일본 발전소 현장 방문을 위한 출장을 앞두고 있었고, 이어 유럽의 원자력 발전소 해체 현장과 신규 원자력 발전소 건설 현장 시찰 일정도 예정돼 있었다.
단순한 방문에 그치지 않는다. 김 회장은 매주 제천에서 서울을 오가며 원자력 발전소 분야 교육을 직접 수강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향후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등 고난도 공정에 필요한 기술적 준비를 꾸준히 진행 중이다.
김인필 회장이 충청도에서 시작한 사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사진=뉴스영
“책상 위에서 답을 찾지 않습니다. 현장에 가야 진짜 기술이 무엇인지 보이고, 우리가 무엇을 더 준비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글로벌 현장에서도, 국내 공장에서도 그는 늘 같은 방식으로 움직인다. 직접 보고, 듣고, 확인하는 것. 그것이 성풍이앤에이가 오늘도 새로운 시장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방식이다.
■ 글로벌 파트너십을 향해
성풍이앤에이는 수직터널 시공을 넘어, 정밀 인프라 분야 전반에서 독립적 실행력을 갖춘 기술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에너지 저장, 방사성 폐기물 처리, 지하 운송망, 고심도 시설 건설 등 세계 각지의 복합 인프라 프로젝트에서 성풍의 역할은 점차 커지고 있다.
지금 성풍이앤에이가 찾는 것은 기술과 책임을 나눌 수 있는 동반자다.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서, 복잡한 공정을 함께 해결하고, 장기적 협력을 만들어갈 수 있는 기업들과의 연결이 바로 다음 단계다.
“우리는 깊이로 증명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책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