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긴 준비 없이 훌쩍 떠나는 여행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멀리 가지 않아도 좋고, 긴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된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익숙한 풍경 밖으로 한 걸음만 내딛어도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긴 추석 연휴라 해도 성묘나 가족 방문으로 분주하게 보내다 보면 정작 자신만의 시간은 많지 않다. 이럴 땐 하루만으로도 충분히 반짝일 수 있는 당일치기 여행이 제격이다.
경기관광공사는 이번 추석을 맞아 도내 곳곳의 짧지만 여운이 긴 6곳의 여행지를 추천했다.
▣ 숲과 계곡이 하나로 어우러진 ‘의왕 청계산맑은숲공원’
청계산 남쪽 자락에 자리한 청계산맑은숲공원은 이름 그대로 숲과 계곡이 어우러진 힐링 명소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나무 향과 흙 내음이 먼저 반긴다. 데크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옆으로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햇살이 나무 사이로 내려앉으며 새들의 지저귐이 계곡 소리와 어우러진다.
공기마저 청량해 쌓인 피로가 가볍게 털리는 느낌이다. 계곡 옆에 캠핑 의자를 펼쳐놓은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여유롭다.
공원 끝에는 신라시대 창건으로 추정되는 청계사가 자리해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고즈넉한 사찰의 기와지붕과 스님의 목탁 소리는 사색의 시간을 선사한다.
▣ 군막사에서 시민 쉼터로 변신 ‘고양 나들라온’
한강 하구의 옛 군막사가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고양시의 ‘나들라온’은 과거 통일촌 군막사 일부를 개조해 만든 곳으로, 이름은 ‘나들이’(나들)와 ‘즐거운’(라온)을 합쳐 만들었다. 내부에는 여군·남군 내무반을 재현한 체험 공간이 마련돼 있다. 직접 군복을 입어보거나, 당시 군 생활을 엿볼 수 있다.
한쪽에는 소파와 테이블이 놓인 휴식 공간도 있어 세련된 카페처럼 이용할 수 있다.
뒤편의 자유로 지하통로는 과거 군인들이 경계 근무를 위해 드나들던 길로, 지금은 자전거길과 연결돼 당일 나들이 코스로 제격이다.
▣ 3천 원으로 즐기는 예술의 호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청계산 북서쪽 자락에 위치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은 숲속의 예술 쉼터다.
입구부터 이어지는 산책길이 아름답고, 서울대공원과 국립박물관, 지하철역과도 가까워 접근성이 좋다.
미술관의 상징인 백남준 작가의 ‘다다익선’은 1,003대의 TV 모니터로 구성된 높이 18.5m의 거대한 설치작품으로, 1988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만들어졌다.
상설전시관에서는 한국 근현대 미술의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으며, 옥상 원형 정원과 야외 휴식공간에서는 숲속 피크닉을 즐길 수 있다.
▣ 조선 왕들과의 고요한 만남 ‘구리 동구릉’
조선 왕릉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동구릉은 아홉 개의 능이 모여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입구부터 정갈한 숲길이 펼쳐지며, 건원릉(태조 이성계의 능)을 비롯해 수릉, 현릉, 휘릉, 목릉, 숭릉, 혜릉, 경릉, 원릉이 조화롭게 자리하고 있다.
특히 건원릉은 태조의 유언에 따라 억새로 덮여 있으며, 숭릉은 조선 왕릉 중 유일한 팔각지붕 정자각이 남아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짙은 녹음 속에서 왕들의 삶과 죽음을 떠올리며 걷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곳이다.
▣ 절벽 아래로 쏟아지는 힘찬 물줄기 ‘연천 재인폭포’
연천의 재인폭포는 처음 마주하면 탄성을 자아내는 풍경이다.
높이 18m의 이중 폭포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며 거대한 장관을 연출한다. 비 온 다음 날이면 물줄기가 더욱 웅장해진다. 전망대, 출렁다리, 폭포 아래 데크길 등 다양한 각도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름의 유래는 ‘광대(材人)’에서 비롯됐으며, 슬픈 전설이 전해진다. 원님에게 줄타기를 강요받은 광대가 폭포 아래로 떨어져 숨지고, 그 아내가 원님에게 복수한 뒤 자결했다는 이야기다.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 전설이 깃든 명소다.
▣ 유일한 것들의 아름다움 ‘이천 처음책방’
‘처음책방’은 이름처럼 세상에 단 하나뿐인 ‘초판본’ 책들을 다루는 특별한 공간이다. 1930~2000년대 초반까지의 초판본이 빼곡히 꽂혀 있고, 일부는 전시용으로만 공개된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김영랑의 '영랑시집(1935)' 같은 귀중한 도서를 직접 볼 수 있다.
잡지와 신문 창간호도 전시돼 있어, 잊고 지냈던 ‘처음의 마음’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몰입하게 되는, 조용한 사색의 공간이다.
경기관광공사 관계자는 “멀리 가지 않아도, 하루만으로 충분히 반짝이는 여행이 가능하다”며 “연휴 중 하루쯤은 경기도의 자연과 문화 속에서 자신을 위한 여유를 찾아보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