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소개] 초록을 엄마라고 부를 때

안차애 시인 시집.
당신의 마음의 색은 무엇인가?

민희윤 승인 2023.02.14 12:03 | 최종 수정 2023.02.14 12:15 의견 0

초록을 엄마라고 부를 때 (안차애 시집)

(뉴스영 민희윤 기자) 200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시집 『불꽃나무 한 그루』 『치명적 그늘』 등을 상재한 안차애 시인의 새 시집 『초록을 엄마라고 부를 때』가 시작시인선 0417번으로 출간되었다.


안차애 시인은 “보이지 않는 행간, 이항 대립의 사이 혹은 너머에 비대칭으로 존재하는, 그러나 근접할 수 없는 것들”을 “호출”하며 “이항 대립의 풍경” 너머에 도사리고 있는 “보이지 않는 것들”(「해설」)을 끊임없이 소환한다.


해설을 쓴 오민석(문학평론가)은 “그녀가 주목하는 것은 대립물이 이루는 뼈대(구조)가 아니라, 그 ‘사이’를 이루는 성분”이며, 이 “대립물들 사이에,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근접할 수도, 범주화할 수도 없는 공간”인 “대립물들의 행간에 존재하는 깊은 무덤, ‘무無의 수수께끼들’”을 주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안차애 시인은 명시성 너머의 비명시성, 가시성 너머의 비가시성, 결정성 너머의 비결정성의 세계를 계속 건드”리는데, “사유란 ‘어떤 결정된 것 앞에서도 멈추지 않는 것’이며 ‘현전하는 모든 사유에 대한 영속적인 중성화’”라는 모리스 블랑쇼(M. Blanchot)의 말을 인용하며, “가시적 이항 대립의 선명성을 신뢰하지 않”는 안차애 시인의 “대립각들의 빛나는 태양 뒤에 숨겨져 있는 혼란과 무한 생성의 어두움을 읽어 내”는 시편들이 “대립각들의 사이와 행간에서 피어나는 꽃들”과 같다고 이야기 한다.

안차애의 시집 『초록을 엄마라고 부를 때』(천년의시작 2022)는 그런 발자국들이 하나둘 모여 생긴 좁고 구불구불한 자갈밭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길은 세계와 마음을 연결해주고 있는바, 필경 색이란 하나의 장소이되 머물러있거나 닫혀 있지 않고 모두를 향해 열려 있는 셈이다.

색을 매개로 세계와 연결되는 감각은 역설적으로 나의 안과 밖을 보다 선명히 구별하게 해준다. “당신의 안과 나의 바깥은 한 점 접점接點도 없이 몇 생의 어스름을 끌고” 가기도 한다. “나의 웃음은 아직 당신에게 닿지 못”하고 “당신의 고요는 아직 질량이 되지 못”한 이 어긋남의 평형상태는 무채색으로 가득 차 있다(「차도르」). 안과 밖에 대한 인식은 “나의 내부는 횡단하라고 있는 게 아니”라는 선언적 명제를 떠오르게도 한다. “미농지보다 얇게 피는 것/유금색으로 번들거리는 것/어슬렁어슬렁 시간을 가로지르는 것들”로부터 “나 아닌 것들이 막무가내 나를 끌어당기듯/너 아닌 것들이 자꾸 너를 읽어 내”는 반목의 정서를 읽어내기도 한다(「중력의 내부」).

색은 세계를 감각하는 여러 방식을 시각으로 환원하는 마술적 원천이기도 하다. “메스칼린이라는 마약을 복용하면 바이올린 소리가 나는 공간을 푸른색이 넘친다고 느낀다”는 시인의 전언에는 푸른색의 소리로 넘실대는 공간을 직접 감각하고픈 달뜬 열망이 묻어난다(「푸른 몸」). 나무의 초록과 바다의 초록을 맞닿게 하는 공간적 상상력은 나뭇잎으로부터 초록 물고기들을, 뿌리로부터 파도의 일렁임을 불러낸다. 육지와 바다의 거리감을 선뜻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바다에서 초록까지의 거리”가 “한낮의 궤도 속에 있”기 때문이다(「나무의 바다」). 나무와 바다의 초록이 한낮의 가시광선을 타고 아득한 물리적 거리를 초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색은 단순히 우리를 세계와 만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와 우리가 만나는 방식을 형이상학적으로 표현한 셈이다. 시인은 이러한 색의 심원한 속성에 천착함으로써 우리와 세계의 깊은 속내에 닿고자 한다. “세상의 모든 색이나 사물에서 파랑을 찾자/파랑에만 집중해서 가장 안쪽 파랑을 찾자/파랑이 쏟아내는 물줄기로 중심의 심중心中까지 온통 적시자”는 호기로운 청유의 문장들은 “니체와 헤세의 첫 문장 사이로 걸어 나오는 파랑의 발자국”을 뒤따라 밟아보고 “첫아이에게 첫 젖을 물리던 날의 푸른 전율”을 온몸으로 받아낸 이만이 허심하게 써내려갈 수 있는 것이다(「아무튼 파랑」).

그러나 색이라는 이 존재론적 교량에도 지름길이 있는데, 모든 색을 남김없이 뺀 하얀색과 모든 색을 다 더한 검은색이 그것이다. 갖은 다채로움을 걷어내어 아마도 빛의 굴절도가 가장 낮을 하얀색은 시인에게 “고비의 밤을 밝”히는 “어미의 젖빛”과도 같다. “갓 태어난 아기 낙타”는 “꺼질 듯 꺼질 듯 살아나는 숨결처럼/흰빛 한 채”가 되어 “네 다리로 서야 젖빛에 닿을 수 있다”(「젖빛이 운다」). 그런가 하면 모든 색을 다 흡수해버려 빛마저도 삼켜버릴 검은색은 “제 꼬리의 검정을 뱅뱅” 맴돌며 졸아들어 “어둠의 어둠이 되고 있”는 “저녁보다 검은, 개”의 눈빛 속에 잠겨 있다(「개, 너머」). 혹은 “검은빛을 지키는 사제처럼 엄숙”하게 “젖은 풀밭에 두 발로 서 있는 고양이”의 발치에 고여 있다(「묘시卯時」).

시처럼 색을 고류 활용하여 표현하는 시인의 여행에 함께 하다 보면 시인의 인생과 우리의 인생이 같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하나의 색으로 표현되는 독특한 색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빛의 굴절이나 조명 없이도 온전히 마음 깊이에서 나오는 진심 말이다.

안차애 시인
200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대학과 대학원에서 국어교육 전공.
시집 『불꽃나무 한 그루』 『치명적 그늘』 『초록을
엄마라고 부를 때』, 교육 도서 『시인 되는 11가지
놀이』 등이 있음.
2014년 세종우수도서 선정.
문예진흥기금, 문화재단기금 다수 수혜.
한국시인협회 회원.
annie925@hanmail.net

수상 : 200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최근작 : <초록을 엄마라고 부를 때>,<치명적 그늘>,<시인 되는 11가지 놀이> … 총 5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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